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귄터 네처 (문단 편집) == 여담 == 당대 그와 함께 독일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볼프강 오베라트]]와의 경쟁 관계는 [[산드로 마촐라]]와 [[지아니 리베라]]와의 경쟁 관계와 비슷하다. [[볼프강 오베라트]]가 [[산드로 마촐라]]처럼 기동성, 체력적으로 우위를 점했고, 귄터 네처가 [[지아니 리베라]]처럼 기술, 패싱력에서 우위를 점했다. 때문에 귄터 네처는 [[UEFA 유로 1972]]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자국을 우승시켰음에도 불구하고,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볼프강 오베라트]]가 수비가담, 기동성이 뛰어나 팀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그에게 대표팀 주전자리를 빼앗겨 본선에서 단 한경기 출장에 그쳤고[* 실제로 서독 대표팀은 [[볼프강 오베라트]]를 주전으로 쓰며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등의 활약 속에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꺾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그 한 경기 마저 서독이 조2위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조별리그 3차전 동독전이었다.[* 조별리그 막판 판세에서 서독은 조2위가 되는 것이 다음 스테이지에서 훨씬 유리해 보였고 실제로 서독은 조별리그 3차전인 동독전에 패한 후 조2위로 올라가서 다른 강팀들을 피해갈 수 있었다. 다만 당시 서독은 라이벌이자 심각한 군사적 대치 상태에 있었던 동독과의 첫 A매치에 패하면서 상당수의 서독 국민들이 분개하는 후폭풍이 불었고 헬무트 쇤 대표팀 감독은 동독전 패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그때 당시 독일 대표팀은 자국 리그에 소속된 선수들을 대표팀 주전으로 쓰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엔트리에 오베라트까지 있는 상황에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던 귄터 네처가 더더욱 기용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큰 근거는 없고, 당시 서독은 해외 리그에서 뛰더라도 기량이 출중하면 대표팀으로 뛰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대표적인 케이스가 70년대의 파울 브라이트너였다. 다만 귄터 네처는 브라이트너보다 앞서 스페인에 진출하여 독일 국가대표급 선수가 해외로 진출한 사실상 첫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점은 있다. 하지만 스페인 리그에 진출했다고 해서 그가 다른 국가대표팀 선수들보다 뛰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 세계 정상의 리그는 서독 분데스리가였고, 스페인 라리가는 60년대 중반 이후 다소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을 3연속 우승할 때였다. 무엇보다도 네처는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안됐고 부상당하기 전부터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다소 부진한 폼을 보였기 때문이다. 귄터 네처 본인도 레알 마드리드 진출 후 자기 관리가 게을러져 폼이 떨어졌고, 월드컵 당시 오베라트의 폼이 더 좋았다고 순순히 인정했었다. 어쨌거나 독일 역대급 패스마스터였으나 동포지션에 역시 역대급 선수가 존재했기 때문에 어찌보면 불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네처와 오베라트는 커리어 전체를 두고 대표팀 승선을 두고 자존심을 건 경쟁을 펼쳤으나 실제로 이 둘의 개인적인 관계는 좋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귄터 네처가 주축이된 1972 유로에서 그는 엄청난 활약으로 자국을 우승시켰고, 오베라트 또한 그가 주축이 된 1974 월드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자국을 우승시켰다. 두 선수 다 대표팀 주축이었을 때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와 불화설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근거 없는 낭설인 것으로 보인다. 불화설의 근거는 당시 서독을 몹시 견제하던 영국의 한 [[황색 언론]]의 기사인데,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프리킥을 누가 찰 지를 두고 베켄바우어와 네처가 다퉜다는 [[가짜 뉴스|설]]을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이 기사에 보도된 내용들은 경기 날짜 등에 있어서 사실과 달랐다. 구글에 쳐보면 베켄바워와 네처가 웃으면서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진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 이들의 관계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베켄바워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지 않고 기부로 대체하면서 [[펠레]]와 귄터 네처를 지목했다. [[파일: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jpg|width=75%]]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미드필더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각주] [[분류:1944년 출생]][[분류:1963년 데뷔]][[분류:1977년 은퇴]][[분류:묀헨글라트바흐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축구경영인]][[분류:미드필더]][[분류: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은퇴, 이적]][[분류:레알 마드리드 CF/은퇴, 이적]][[분류: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은퇴, 이적]][[분류: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74 FIFA 월드컵 서독 참가 선수]][[분류:독일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1972 참가 선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